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미군 (문단 편집) === 전술적 측면 === 베트남전 당시 미군의 실상을 보면 실로 참혹하기 그지 없었다. 미군은 특수부대 제외하면 나머지 군인들은 [[제파 전술]]을 선호하는데 문제는 제파 전술이 시간을 오래 끌면 안되는 전술이며 평야 지역인 몽골 지역 혹은 유럽과 달리 정글과 산맥은 물론 단결심이 강한 민족에게 절대로 쓰면 안되는 전술이다. 미국은 두번의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승승장구 했지만 평야 지역 한정이며 쿠바, 베트남 등지에서는 게릴라 위주로 가기 때문에 압도적으로 제압하더라도 비용이 상당히 많이 나간다. 심하면 나중에 [[PTSD]]를 걸리고 학살까지 가는데 이렇게 되면 여론이 안좋게 나올 뿐더러 전쟁에 질색이 난 같은 우방국들도 등 돌릴 수 밖에 없다. 당시 미군은 게릴라전에 전혀 익숙하지 않아서 베트콩과 북베트남군의 게릴라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전쟁 초기 미군의 주력소총이었던 [[M14 소총]]은 베트남과 같은 정글전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과 똑같이 제파 전술을 썼던 소련 역시 아프가니스탄 침공할때 산맥에서 최신형 전차의 한계를 드러냈다.] 목제 스톡을 사용하는 M14는 베트남의 습기, 하천지대 등에서 내구성 문제를 드러냈다. 물론 북베트남 정규군이나 베트콩도 목제 스톡의 SKS, 목재 개머리판과 핸드가드를 사용하는 중국에게서 지원받은 56식 소총(AK-47)을 사용했으나 이들은 인도차이나 전쟁때부터 쌓인 노하우로 목재 부품들을 라드(돼지기름)를 녹여 코팅했다. 또한 상대적으로 많은 장탄수와 분당 발사속도가 우수하고 또한 현재까지 내구성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AK계열은 정글 우림지대에서 탁월한 안정성을 자랑했다. 하지만 M14는 애초에 탁 트인 야지에서의 운용을 가정하고 만들어졌고 자동발사시 반동도 너무 강했을 뿐더러 정글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긴, 한마디로 "장총"이었다. 즉, 2차대전기의 주력소총이었던 [[M1 개런드]]에 장탄수 늘리고 자동발사 기능만 추가한 수준인 시대에 뒤떨어진 물건이었다. 당시의 베트콩은 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군에게 취득한 MAT49, 미국산 톰슨 류의 기관단총도 운용하고 있어서 협소한 정글에서 갑툭튀하여 탄환을 비오듯 퍼붓고 튀는 전술은 미군도 당해내기가 힘들었다. 미군은 북베트남 정규군을 상대로는 1대 9, 베트콩을 상대로는 1대 20 정도의 [[교환비]]를 내긴 했으나 이는 동맹국들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낮고, [[태평양 전쟁]]과 한국전쟁 때의 미군과 비교해도 너무나도 형편없어진 교환비였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은 북베트남 정규군을 상대로도 1대 24의 교환비를 냈고, 베트콩을 상대로는 1대 40의 교환비를 자랑했다. 호주군 같은 경우, 북베트남 정규군 상대로 1대 50, 베트콩 상대로는 거의 1대 100 이상의 정신나간 교환비를 낸 것에 비하면 미군의 교환비는 너무나도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미군도 북한군이나 중공군을 상대로 1대 50 이상의 교환비를 냈었는데 과거에 비해서도 훨씬 모자란 수치였다. 특수부대나 일반 전투 부대의 정예병 중심으로 파견한[* 일선 보병사단 병력들 중 자원한 우수 인원들로 사단을 구성해 파병했다.] [[한국군]], [[ANZAC]]군과 달리 미군은 일반 징집병이 비교도 안되는 규모로 동원됐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세간의 인식과 달리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미군 중에는 자원병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단순 비율로는 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높다. 즉 아무나 그냥 막 잡아서 전쟁터에 투입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즉 공산주의에 대항하고자 하는 청년들의 애국심섞인 호승심, 할아버지는 1차대전 참전용사 아버지는 2차대전 참전용사 등 군인집안 자제들이 많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도 T/O를 메꾸기 위해 불특정 다수로 징집된 질낮은 자원과 베트남전 특유의 분위기에 점차 물들어가게 된 것이다. 1967년 중반부터 [[M16 소총]]이 미군에 보급되었고, M14에 비해 성능은 분명 우수했다. 플라스틱 재질의 핸드가드와 개머리, 적절한 반동, M14보다 컴팩트한 사이즈등 장점은 무척 많았으나 초기에는 초도 보급 총기 자체의 결함, [[M4#s-3|장약]]의 미스매치, 잘못 퍼진 총기 관리에 대한 루머 등으로 인해 고장으로 악평을 들었다.[* 미 의회에서 아이코드 의원을 중심으로 한 아이코드 위원회는 M16의 원인 중 하나로 화약을 짚었다. 223 레밍턴 민수용 탄약의 IMR4475 과립형 탄약은 약실에 탄매가 끼는게 덜했지만 WC846 군 제식 볼 파우더가 탄속이 더 높아서 교체됐는데, 이게 탄매가 끼는걸 가속화 시키고 오작동 하는데 어느 정도 기여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XM16E1이 30,000정 정도 소수 운용될 때부터 “미래적인 총이라 총기손질을 할 필요가 없다” 라는 소문이 퍼저서 다들 총기손질을 안한 것과 신형 총이라 총기손질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은게 문제였다. 그래서 전용 청소도구와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화 형식으로 총기손질 교육 만화를 배포했고, 그제서야 작동불량 문제가 해결된다. 총기 자체문제를 해결하려고 시도했던건 1967년 5월 경으로 약실 크롬도금 외에는 크게 없었고, 총신 크롬도금과 함께 화약도 70년대쯤이나 개량된다.] 그래서 지급받은 M16을 버리고 [[AK-47]]을 쓰는 미군들이 꽤 있었는데 문제는 [[MACV-SOG]] 산하 특작대원들의 여러 임무 가운데 하나가 [[베트콩]]의 탄약고에 잠입해 AK-47용 7.62x39mm M43 탄의 정밀모형 내지는 불량품 등을 끼워넣는 것이었다. 원래는 [[베트콩]] 및 이들에게 파견된 [[북베트남군]]이 총을 썼을 때, 작동고장 및 이로 인한 폭발까지 노려[* 실제로 어떤 베트콩의 경우 자신이 쓰던 AK-47이 폭발해 [[노리쇠]]가 눈에 박혀 죽은 사례도 있다 카더라.] 자신들의 주력 소총을 불신하게 만들려는 것으로 당시 미군 상층부도 '적군의 AK-47는 원래 불량률 높은 총이다'라고 일선의 병사들에게 이러한 내용의 교육을 해 특작부대들의 행동에 대한 연막 및 이로 인한 아군의 피해를 방지하려고 했지만, 혼란스럽고 급박한 전장에서 불량탄이 삽입된 AK를 가릴 틈도, 능력도 없는 미군 보병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였고, 결국 이런 랜덤박스급 상황에서 '불량탄 삽입 AK'라는 꽝카드를 선택한 미군 병사들까지도 베트콩 및 이들을 지원하러 온 북베트남군 병사들과 같이 펑펑 터져나갔다.[* 아무리 AK를 쓰기 싫어도 M16 소총이 고장나거나 탄약이 바닥난 상황에서 적군의 무기라도 주워쓰는게 이치다. 그렇다보니 결국 애꿎은 미군 병사들만 부상당하거나 죽어나갔다. 이렇다보니 당시 월맹군이나 북베트남군 무기 중에서 AK가 아닌 PPSh-41이나 MAT-49 기관단총 같이 다른 무기가 있다면 횡재했다고 그걸 주워 쓰는 미군들도 있었다.] [[M60 기관총]]도 오염에 취약하여 고장이 잦아 베트남에서는 부적합한 총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장병들에게 지급되었으며 쓸데없이 무겁기만 해서 병사들에게 '화약 먹는 돼지' 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화 [[람보 시리즈#영화|람보]] 같은 데서는 남자의 상징, 마초이즘의 상징 격인 총으로 등장하지만 실제 M60은 베트남전 당시 미군들에게 악평이 자자한 잔고장이 많은 총기였던 것이다. [[미합중국 공군]] 또한 베트남전에서는 희한하리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미 공군은 [[태평양 전쟁]]과 [[6.25 전쟁]]에서 최소 1:3 이상의 교환비를 접하고 있었으나 북베트남 공군을 상대로는 1:2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F-4 팬텀 II]]가 미그기들을 상대로 1:3.67의 교환비를 냈지만 [[F-105]]는 [[MiG-17]]를 상대로 1:1.6을 간신히 넘기는 초라한 전과만 올리는 등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 F-105는 공대지용으로 만든 기체다. 억지로 공대공 전투에 넣다 보니 이렇게 된 것.] 사실 전투기보다 더 큰 문제는 북베트남의 방공망으로 [[롤링썬더 작전]]에서 공중전 손실비는 미군의 우위였으나 소련에서 제공한 베트남군의 소련제 지대공 장비에 미군기가 무더기로 격추당했다. 그래서 미국은 북베트남 방공망을 조지기 위해서 '''[[와일드 위즐]]''' 기체를 도입한다. 물론 북베트남 공군의 방해로 고생하지만 [[볼로 작전]]을 통해서 북베트남 공군을 일방적으로 털어버리는 등[* 북베트남은 [[MiG-21]] 7대가 격추되었고' 미국의 피해는 없음. 당시 북베트남이 보유한 MiG-21은 16대였으니 거의 절반을 한번에 날려버린 셈이다.] 그럭저럭 대처할 수 있었다. 미사일의 문제는 '''미사일 만능주의'''의 탓도 있지만 당시 기술 수준으로 발칸포와 진공관 레이더를 기수에 쑤셔넣기는 어려웠던 것도 있고, 단순히 기관포의 부재탓을 하기에는 기관포가 없는 해군의 F-4가 나중에 기관포를 장착한 공군보다 우수한 전과를 올렸다.[* 미 해군의 F-4는 1:5.71의 교환비를, 미 공군은 1:3.24의 교환비를 기록했다.] 결론적으로 미군 항공기가 북베트남 항공기에게 일방적으로 털린 적은 없고, 고전하기는 했어도 손실비에서는 미국의 우위라는 건 사실이다. 이따금 지대공 장비에 의한 손실까지 전부 베트남 공군기의 전과로 밀어넣어서 미군이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을 당했다고 기술하는 경우가 있는데 엄연한 왜곡이다. 헬기 손실 역시 엄청났다. 하루에 한 대 꼴로 대공기관포와 미사일, 로켓 등에 의해 격추됐으며, 착륙 지점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작전에서는 부비트랩이나 매복으로 인한 손실도 엄청났다. 특히 [[소련]]과 [[중국]]의 지원 덕에 북베트남군의 방공망은 매우 탄탄했다. 그래서 미군 항공기는 '''[[UH-1]], [[AH-1]], [[CH-47]], [[OH-6]], [[F-4 팬텀 II]], [[F-105]], [[AC-47]], [[AC-130]], [[A-1 스카이레이더|A-1]], [[B-52]]''' 등 모든 항공장비들은 늘상 '''[[SA-2]]나 RPG, 중기관총'''의 위협에 시달려야 했고, 베트남 전쟁 동안 미군이 손실한 항공기의 총 수량은 최소한 네자릿수를 넘는다. 마이클 매클리어의 '베트남 10,000일의 전쟁'이라는 책에 따르면 이 중 1,000대 이상이 북베트남 상공에서 파괴됐다 한다. 그나마 그 교환비도 불명확한 것이 미군 뿐만 아니라 남베트남 진영 연합군 모두가 해당되는 문제로, 당시 연합군의 사살 전과 계산이 발견한 적군 시신 한 구당 몇 명 사살, 적군 총기 노획 한정당 몇 명 사살 이런 식으로 주먹구구식 계산이었던 관계로 실제로 더 교환비가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북베트남 정규군을 상대로 하는 경우. 애초에 베트남전 특성상 적을 몇 명 사살했는지 알기도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긴 하지만. 베트남 전쟁 기간 동안 최대의 전투 중 하나였던 [[케산 전투]]만 해도 케산 요새 포위전에서 미군이 실제 발견한 시신은 1,600구에 불과했으나 미군은 이를 10,000명 이상 사살했을 거라고 대충 추정을 때려버린다. 특히 호주군 일반 부대나 한국군의 경우에는 작전구역 특성상 실제로 북베트남 정규군보다는 베트콩과 전투를 벌이는 빈도가 더 많았다. 북베트남 정규군과 맞서야 했던 건 대부분 미군이었다. 실제로 [[북베트남]] 정규군이 상대였던 야전의 경우에는 연합군은 거의 예외없이 고전해야 했다. 주월 한국군의 경우 [[안케패스 전투]]에서 실제 작전기간 내내 고전하다가 마지막에 638고지 점령 직후 실제 발견한 적 시신은 4구, 무기[[노획]] 36정에 불과했는데 이걸 별 근거도 없이 436명을 사살했다고 보고하는 희대의 뻥튀기를 보여줬다. 1대 100의 신화에 빛나는 호주군도 호주군대로 [[롱탄 전투]]에서 실제 발견한 적 시신은 50구였으나 600명 이상의 사상전과를 올렸다고 과장해서 보고했다.[* 다만 롱탄 전투의 경우 교환비와 별개로 당시 호주군이 거기서 지원군이 오기까지 수 시간이나 버텨낸 것부터가 엄청난 분전이었다.] 보고부터가 이 꼴이니 1대 몇십 어쩌고 교환비 가지고 누가 높니 낮니 해봐야 과연 얼마나 이게 정확한 수치일지는 의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군이 주장한 전과가 전부 진실이라면 [[북베트남]]의 지상전 수행역량이 크게 약화되었을 것이나 현실은 전쟁기간 내내 북베트남의 지상전 수행역량은 전혀 감소하지 않았다는 게 현실. 물론 실제로 발견한 시신이나 무기 기준으로도 수십대 1의 교환비를 보인 전투들도 적진 않았으나[* 그 유명한 [[짜빈동 전투]]나 [[두코 전투]]의 전과계산은 실제 시신발견 및 무기노획 기준으로 이뤄졌다.] 많은 부분에서 과장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북베트남]] 측도 과장은 연합군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이들이 주장하는 연합군을 상대로 한 전과는 엄청나게 높고, 자신들의 손실은 매우 적은데 이쪽은 가히 월맹무쌍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전과 과장의 정도가 더더욱 심하다. 양측 모두 과장 및 축소가 있을 것이고 양측 주장의 중간쯤으로 추정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군의 대민 정책은 군이 아닌 민간 단체가 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위험한 지역에 민간 단체가 올 리가 없으며 미군이 다 해결해야 하는 판에 미국스러운 원조 방식으로 트럭에 쌀을 갖고와서 마을에 던져 놓고가기 일쑤였다.[* 한반도 휴전 협정 후에도 원조할때도 그랬었다.] 베트남 주민들은 우리 쌀 뺏어놓고 인심 쓴다고 불평했을 정도. 그렇다고 해서 북베트남이 전투에서 생각보다 잘 싸웠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교전비가 정확히 무엇이든지간에 전투 대부분은 남베트남 파병군의 승리였다. 미군도 북베트남 진영에 대해서 교전비가 현저하게 우세하다는 것은 정황상 명확하다. 단지 정확한 수치를 알 수 없을 뿐이다. 교전비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북베트남]]이 전투에서 피해를 적게 입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며, 막대한 전술적 손실을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전략적인 면, 그리고 여론이라는 측면에서 북베트남 진영이 남베트남 진영에 비해 우세했기 때문에 승리했다고 보는 게 맞다. 특히 전쟁을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주체인 [[남베트남]]이 총체적으로 부패에 시달렸고, 그에 따라 남베트남군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보급이 엉망인데다 내부에 스파이가 넘쳐나고 전투수행 의지도 낮은 오합지졸로 구성된 막장군대였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유엔군사령부|유엔군]]이 큰 역할을 했던 한국 전쟁조차도 한국군 지휘부가 정신 차리고 활약하지 않았으면 결국 공산화가 되었을 것이다. 한국 전쟁에서 적화통일이 저지된 주요 요인이 한국군과 한국 정부의 국가 수호 의지였던 것처럼, 남베트남 패망의 주요 요인은 남베트남의 낮은 국가 역량과 남베트남 정부의 부정부패 및 국가 수호 의지 결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